추천산행

2015년4월23일 경북 경주 단석산 산행안내(회비\20,000원)

psw-성원 2015. 4. 17. 09:54

단석산 [斷石山]

출발일시;2015년4월23일 08시00분

출발장소;부산 동래지하철4번출구(만덕,덕천경유) 

산행코스;천주암-기둥바위-정상-비지고개-큰골-천주암

산행시간;약5시간

높이 : 827m
위치 : 경북 경주시 건천읍

특징, 볼거리

경주 국립공원의 외곳에 있는 단석산(827m)은 경주에서 약40리 떨어진 건천읍에서 산내면으로 가는 도중 왼편 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경주 부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이 산은 삼국통일 이전에는 경주 남산, 금오산, 토함산, 소금강산과 함께 신라인들이 신성시한 오악 중에서도 중악(中岳)이라 하였으니 나라의 영산으로 모셔왔던 산이다. 단석산에는 곳곳에 많은 진달래군락이 있지만 643봉으로 직행하는 남쪽의 등산로를 따라 잠시소나무 숲을 지나가면 키높이를 훨씬 넘는 대단한 규모의 진달래군락을 만날 수 있다.

단석산 정상은 억새밭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앙이 절반으로 갈라진 원형의 단석이 놓여 있다.

단석산은 모시밭각단에서 정상에 올라 우중골로 하산하는 코스가 주등산로이다. 진달래 숲이 곳곳에 있으며 특히 634봉과 정상 앞의 무명봉 주위에 밀집돼 있어 장관을 이룬다. 우회하지 말고 반드시 능선으로 바로 올라가야 한다. 정상에서 북쪽 797봉 너머에도 진달래 화원을 이루고 있다

삼국통일의 공신인 김유신(金庾信)은 595년(진평왕 17년) 충북 진천에서 만노군(萬弩郡)의 태수이던 서현(敍玄)장군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로왕의 13대손인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17세에 고구려, 백제의 잦은 침략에 삼국 통일의 큰 뜻을 품고 서라벌 서쪽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 하고 천지신명에게 고구려, 백제,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4일 만에 한 노인이 나타나 김유신의 인내와 정성을 가상히 여겨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神劍)을 주었다고 삼국사지, 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에 소개되어 있다. 김유신은 이 신검으로 고구려, 백제와 싸울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며, 당시의 화랑들이 수도하던 산에서 김유신은 이 칼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다고 하여, 이름이 단석산(斷石山)이 되었다.

이 산은 건천읍 송선리 산89번지 우중골에 있으며, 산 7∼8부 능선 4개의 바위가 둘러싸인 천연굴이 있는데 옛날에는 상인암(上人巖:일명탱바위)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화랑들은 이 바위굴 속에 불상을 새기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석굴사원을 만들었다. 이 절을 신선사(神仙寺) 또는 단석사(斷石寺)라고 부른다. 내부의 마애불상은 국보 제 199호로 지정되었다. 단석산은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827m)으로 백제에 대한 신라의 국방의 요충지였다. 이 지역은 진달래군락지로 봄철 산악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인근 조래봉(657m)과 더불어 등산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김유신의 유적지는 충북 진천에 담안밭 탄생지, 태를 묻은 태령산,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 연보정, 말을 훈련시켰다는 치마대와 투구모양의 투구바위가 있으며 길상사는 흥덕왕 10년(835)에 흥무대왕으로 추봉된 후 사당으로 건축되어 장군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경주에는 김유신장군묘와 금산재비각이 있다. 사귀던 천관녀의 집터는 천관사로 남아있다. 천관(天官)이란 여인의 집에 자주 드나들자, 어머니 만명(萬明)부인은 왕과 부모에게 기쁨을 주기를 기대했는데 술과 여자를 즐기느냐며 울며 타이르자 다시는 그여자 집에 가지 않기를 맹세했다. 그러던 어느날 말은 유신을 태우고 눈에 익은 길을 따라 천관녀의 집에 다다르자 유신은 말의 목을 베어버리고 그 집을 떠났다. 천관은 원사 한곡을 지어 속세를 떠났다고 한다. 고려의 문인 이규보(李奎報)는 이에 아래와 같이 읊었다.

절 이름 천관사 옛부터 연있더니
홀연 지낸 일 듣고 한 번 슬퍼라.
삐딱이 취한 공자 꽃아래서 놀고
애원하는 미인 말앞에서 우네.
적토마 다정해서 오히려 길을 알고
상노는 무슨 죄로 채찍을 받았더냐.
다만 남은 것은 한 곡조 좋은 가사
휘영청 달빛 아래 만고에 전해지네.

김유신은 엄격한 성품을 신라 국민정신과 화랑정신으로 승화시켰는 바 이 엄격함은 가훈을 어긴 아들 원술과 부자의 연을 끊어버리기까지 한데에서도 잘 나타나고, 당나라의 영토적 집착을 단호히 물리친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 고구려를 멸하여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은 태대각간의 직위를 받고 673년 78세로 세상을 떴으며, 사후 162년 후 인신으로서 대왕(흥무)에까지 오른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누이 문희(文姬)는 김춘추에게 출가하여 무열왕비가 되어 문무대왕을 낳았다

 

산행지도;